상가 임대업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임차인의 연체 차임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하거나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대목적물을 제3자에게 전대하였을 경우, 임대차계약을 당연히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내용은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널리 사용되는 상가임대차계약서에 부동문자로 인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민법 제629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이라 함) 제10조의8에도 그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판례는, 이 중 차임 연체를 이유로 한 임대차계약 해지의 경우, 이는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사용·수익 의무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하기 위한 규정이라는 이유로, 임대인이 최고 없이도 곧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1962. 10. 11. 선고 62다496 판결 등). 한편,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1호는 차임 연체의 경우에, 같은 항 제4호는 무단전대의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의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각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상 정해진 용도 내지 용법대로 사용·수익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용도외사용(용도위반)’의 경우는 어떠할까?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목적물을 용도 외로 사용하였을 경우, 임대인은 이때도 최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만약 계약 해지까지는 어렵다면, 적어도 계약 갱신요구 정도는 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용도외사용이든 무단전대든 그것이 임차인의 중대한 의무 위반에 해당함은 매한가지이므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 법적 효과가 같아야 할 것 같은데, 이게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의 상담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A씨는 그 소유인 건물 일부에 대해 B씨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고, 계약 당시 B씨는 임대목적물을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음악연습실(업태: 공간대여업)로 사용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 B씨는 대외적으로 자신의 음악연습실을 24시간 출입 및 숙식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광고하면서, 그 내부에 전자레인지, 세탁기, 건조기, 샤워실까지 구비해 두었고, A씨가 알기로 실제로 그 안에서 몇 달째 숙박 중인 자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외부인이 숙박까지 하며 밤낮 할 것 없이 건물을 출입하고, 때로는 친구나 이성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건물의 관리나 가치 제고 측면에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한 A씨는, 관련 법률 혹은 계약 위반을 이유로 B씨와의 임대차계약을 중도 해지하거나 또는 적어도 갱신요구를 거절하여 B씨를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일단, B씨가 무단전대를 한 것일까? 위 공간에서 몇 달째 숙식을 하고 있는 이용객들도 있는 것을 보면(그리고 A씨는 B씨의 영업 행태가 그 정도에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얼핏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A씨는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공간대여업(음악연습실)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기 때문에, B씨 이외의 제3자(이용객)가 해당 공간을 점유·사용하더라도 (후술하는 용도외사용이 문제될 수 있을지언정) 이를 두고 무단전대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B씨가 용도외사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현행법상 음악연습실, 즉 공간대여업을 영위하는 데에는 특별한 법적 제한(허가나 신고 등)이 없는 반면, 숙박업을 영위하려면 「공중위생관리법」에 의거 신고를 하여야 하는 등 일정한 법적 제한이 따른다.
실질적으로 숙박업과 같이 운영되면서도 명목상으로는 음악연습실이므로 관련 법에 따른 인허가를 안 받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탈법행위이다.
살피건대, A씨의 입장에서 B씨가 임대목적물을 숙박업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것까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B씨가 세탁기 등 숙박에 필요한 가전까지 갖춰 놓고 널리 숙식이 가능하다고까지 광고하며 이용객을 모집하고 기거하게 한 것은, 계약상 고지된 용도(24시간 음악연습실 대여업)를 위반한 것, 즉 용도외사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단전대나 3기의 차임 연체와는 다르게, ‘용도외사용’에 관해서는 우리 민법이나 상가임대차법에 관련 조문이 없다. 따라서 당사자 간 특약이 없다면, 이 경우(즉, ‘용도외사용’의 경우) 최고 없이도 즉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A씨가 용도외사용을 지적하며 B씨에게 그 시정을 최고하였고 이에 B씨가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적어도 당장은) 계약 해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B씨의 갱신요구는 어떠할까? A씨에게는 안타깝지만, 상가임대차법은 무단전대에 대해서는 이를 갱신요구 거절 사유로 규정(제10조 제1항 제4호)하고 있는 반면, 용도외사용은 이를 갱신요구 거절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다.
결국 A씨로서는, 당사자 간 별도 약정이 없는 한, 앞서와 같이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시정 최고를 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가 이를 재차 위반하는 등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8호에 의거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 법은 임차인의 ‘용도외사용’과 ‘무단전대’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으며, ‘용도외사용’에 대한 규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 계약으로써 정할 것을 상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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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변호사 | 법무법인 리앤리 대표변호사
- 現) 법무법인 리앤리 대표변호사
- 前) 법률사무소 태서 대표변호사
- 前) 법률사무소 리앤리 소속변호사
- 제6회 변호사시험 합격
-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6기)
-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