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등기란 본등기, 종국등기가 형식적 또는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장래에 하게 될 본등기의 순위를 보전하기 위해 미리 해두는 등기로, 예비등기의 일종을 일컫는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등기는 미래에 이 집을 소유할 예정이라며 걸어 두는 일종의 매매 예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등기는 청구권 보전의 효력과 더불어 순위보전의 효력이 있으며, 가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경료할 경우, 가등기 시점의 순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민법 제564조가 정하고 있는 매매예약에서 예약자의 상대방이 매매예약 완결의 의사표시를 하여 매매의 효력을 생기게 하는 권리, 즉 매매예약의 완결권은 일종의 형성권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행사기간을 약정한 때에는 그 기간 내에, 약정이 없는 때에는 예약이 성립한 때부터 10년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고, 그 기간이 지난 때에는 예약완결권은 제척기간의 경과로 소멸한다.
어느 지적장애인이 집안의 오랜 삶의 터전인 농지를 상속받아 오래도록 경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먼 도시에 살고 있는 친척 부부가 그의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챙겨 등기소에 데리고 가 가등기를 경료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그 친척 부부는 당사자에게 사실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농사짓는 데 필요한 일이라며 선심 쓰는 듯이 도장을 찍게 하였다고 한다.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요하지만, 가등기를 신청하는 데는 농지 소재지 관서의 농지매매증명이나 농수산부장관의 농지전용허가서, 농지취득자격증명원 등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먼저 가등기를 경료시킨 후, 적당한 시점을 보아 농지가 해제되거나 등기가 가능한 시점에 본등기를 경료하려 하였던 의도로 보인다.
가등기 말소등기의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매매예약이 무효·해제·취소되거나 착오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혹은 매매예약을 하였지만 예약완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10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제척기간 경과에 의해 예약의 효력이 상실된다.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가등기를 한 경우라면, 매매예약의 효력 소멸을 원인으로 가등기말소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제척기간은 권리자로 하여금 당해 권리를 신속하게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려는 데 그 제도의 취지가 있는 것이다. 소멸시효가 일정한 기간의 경과와 권리의 불행사에 의해 권리 소멸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과는 달리, 제척기간은 그 기간의 경과 자체만으로 곧 권리 소멸의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당초 권리의 발생일인 매매예약일로부터 10년이 경과된 점이 확인되고, 매매예약 완결 간주 조항이 없으며, 예약완결권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면, 말소는 비교적 쉽게 인정된다.
꽤 시간이 흐른 후, 지적장애인의 자녀가 위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친척 부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연락을 받지 않았다. 형사고소 등을 고민했으나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등기라도 말소시킨 후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안의 경우, 지적장애인임을 증명해 가등기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매매예약에 기한 예약완결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예약일로부터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하여 소멸하였음을 주장함으로써, 비교적 빠르고 간편하게 가등기를 말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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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변호사 | 정오의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한양대학교 법학과 졸업
- 정오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대한변협 인증 민사·이혼 전문 변호사